PIBI Gallery presents solo exhibition by Jazoo Yang All that will remain, something that will never disappear from August 12 to October 3, 2026. Based in Korea and Berlin, Yang explores the memories and sensations that accumulate within urban environments, as well as the relationship between people and places. She collects objects and traces left behind at redevelopment sites and on the streets, incorporating them into a wide-ranging practice that encompasses painting, installation, live painting, and public art projects. Marking Yang’s first solo exhibition with PIBI Gallery, the exhibition presents the new Bulgasari series (2026) along with Skin of Everything (2023–), a series combining large-scale paintings with sound and the Thorns series (2020–).
The new Bulgasari series emerged from the age-old system of perception that Yang encountered in Yeongdeok’s natural environment and the life of its local community after returning to Korea from Berlin in the wake of the COVID-19 pandemic. Practices such as the villagers’ ways of reading the weather and their attitudes toward the sea and the mountains, often dismissed as unscientific or superstitious, offered the artist another way of engaging with the world. This perspective resonated with Yang’s long-standing interest in Claude Lévi- Strauss’s structuralism, particularly the idea that opposing terms such as nature and culture, or life and death, generate new meaning through a mediating presence. This line of thought, in turn, extended to Bulgasari, a creature from Korean folklore.
An immortal being that grows by feeding on metal, Bulgasari cannot be killed by any weapon and regenerates even after being consumed by fire. In this exhibition, it serves as a metaphor for vitality and transformation, suggesting survival through continual changes in form. The Bulgasari series uses castor aralia thorns and pearl-headed pins as its primary materials. The two materials have opposing properties: the thorns grow outward to protect the plant, while the pins pierce the surface. They overlap on the canvas to form a surface that evokes skin, scales, and wounds. This process, in which disparate sensations and memories, as well as the natural and the artificial, establish new relationships, calls to mind Bulgasari’s mode of existence, one of constant change and survival.
The exhibition highlights the physical properties of Yang’s materials and the bodily sensations involved in handling them. This is evident in the contrast between thorns and pearl- headed pins in the Bulgasari series, and in the Thorns series, in which castor aralia thorns are densely affixed to the interiors of storage boxes. In the Skin of Everything series, Yang responds spontaneously to the sensations she experiences upon encountering the canvas’s elasticity, capturing the vibrations and reverberations that arise in the process as sound. The artist’s physical acts of attaching, applying, and pressing materials by hand give rise to new tactile imagery from their surfaces. Meanwhile, the sounds produced by her bodily movements amplify immaterial sensation. Through the textures and forms of the works on display, these material and bodily sensations connect to a primordial state in which sensation and reality intermingle.
Working both within and beyond institutional frameworks, Yang sustains a practice that unfolds almost like a form of prayer or invocation. Her approach is imbued with reverence and respect for things that have acquired vitality over long periods of time. (Excerpt from Heeseung Choi, Wishing for [ ] , 2026)
Through the figure of Bulgasari, All that will remain, something that will never disappear seeks to summon onto the surface of painting what has been pushed beyond the bounds of rationality and has gradually disappeared, along with what ultimately remains and returns. Much as myths continually change across time and place, the works in the exhibition resist a single fixed meaning and call forth sensations that elude both linguistic and scientific explanation.
피비갤러리는 2026년 8월 12일부터 10월 3일까지 양자주 개인전 《남아 있을 모든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을 개최한다. 한국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양자주는 도시 환경 속에서 축적되는 기억과 감각, 그리고 인간과 장소의 관계를 탐구한다. 작가는 재개발 현장과 거리에 남겨진 사물과 흔적을 채집하고, 이를 재료로 삼아 회화, 설치, 라이브 페인팅, 공공 예술프로젝트 등 다양한 형식의 작업으로 확장해왔다. 이번 전시는 양자주가 피비갤러리 전속 작가로 처음 선보이는 개인전으 로, 대형 회화와 사운드로 이루어진 <모든 것의 피부>(2023 - ) 시리즈와 신작 <불가살이>(2026) 시리즈, (2020 - ) 시리즈를 소개한다.
신작 <불가살이> 시리즈는 코로나 이후 베를린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양자주 작가가 영덕의 자연과 지역 공동체의 삶에서 경험한 오래된 인식체계를 바탕으로 비롯된다. 마을 주민들이 날씨를 읽는 방식, 바다와 산을 대하는 태도처럼 흔히 비과학적이거나 미신으로 치부되는 관습들은 작가에게 세계와 교감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가왔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즉 자연 과 문화, 삶과 죽음 같은 대립하는 항들이 매개적 존재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사유와 맞물리며, 한국 설화 속 존재 '불가살이(不可殺伊)'로 확장된다.
‘불가살이(不可殺伊)’는 쇠붙이를 먹으며 자라나고 어떤 무기로도 절대 죽일 수 없으 며, 불에 타더라도 다시 생성되는 불사의 존재로, 이번 전시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살아남는 생명력과 변형의 은유로 기능한다. <불가살이> 시리즈에서는 엄나 무 가시와 진주핀을 주재료로 사용한다. 외부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자라나고, 표면을 파고드는 서로 상반된 성질의 두 재료가 캔버스 위에서 중첩되며 표피와 비늘, 상처를 연상시키는 표면을 형성한다. 서로 다른 감각과 기억, 그리고 자연과 인공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이 과정은,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살아남는 불가살이의 존재 방식을 환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가시와 진주핀의 대비가 드러나는 <불가살이> 시리즈, 오브제 위에 엄나무 가시를 촘촘히 붙여낸 시리즈처럼 재료의 물성과 그것을 다루 는 신체의 감각이 두드러진다. 특히 <모든 것의 피부> 시리즈는 탄성을 지닌 캔버 스와 대면한 순간 느낀 감각을 즉흥적으로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진동과 울림을 사운드로 담아낸 작업이다. 즉, 손으로 직접 붙이고 바르고 찍어내는 작가의 신체적 행위는 재료의 표면으로부터 새로운 촉각적 심상을 발현시키며, 작업과정에 서 신체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소리는 비물질적 감각을 증폭시키는 장치로서 작동한 다. 이러한 재료와 신체의 감각은 전시 공간 안 작품의 질감과 형상을 통해 감각과 현실 사이에서 원초적으로 뒤섞인 감각을 연결한다.
제도권 안과 밖을 넘나들며 마치 기도하거나 염원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가는 양자주의 태도에는 긴 시간을 통과하며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들에 대한 공경과 존중이 담겨있다. (최희승, 「Wishing for [ ] 」, 2026)
양자주 개인전 《남아 있을 모든 것,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어떤 것》은 불가살이의 형상을 통해 합리성의 영역 밖으로 밀려 사라져온 것들과 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것들을 회화의 표면으로 불러내고자 한다. 신화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 하듯 전시장의 작품들 역시 하나의 의미로 고정되지 않고 언어나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들을 호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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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갤러리 양자주 개인전 서문>
Wishing for [ ]
최희승 (큐레이터)
어느 마을에서 수호신으로 모시던 당산나무를 도로 개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잘라낸 뒤, 나무를 자른 사람과 주민들이 이유 없는 사고를 연이어 당했다는 민담을 들어본 적 있는가? 혹은 영험한 바위에 정을 박아 훼손시킨 이름 모를 풍수사의 자손들이 이후 갑자기 눈이 멀거나 병에 걸려 결국 대가 끊겼다는 이야기는 어떠한가. 양자주는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정서로 공감할 수 있는 오래된 믿음이나 인간과 자연에 대한 원시적, 주술적인 것 등에 관심을 가지고 회화, 사운드, 설치 등으로 구현하고 있다. 직전에 특정한 민담과 설화를 예로 들었지만 작가가 이와 같은 개별의 내러티브를 재현하거나 모티브를형상화하는 일에 주력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는 인간과 자연의 정신적인 상호작용에 경외와 호기심을 가지고 자신의 신체를 마치 이들의 사이 존재처럼 대하며 주요한 작업의 매체로써 사용한다. 예를 들어 그의 캔버스나 벽화에는 지문이나 손자국 등 그가 남긴 신체의 흔적이 전면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그러한 흔적들을 통해 작업의 형식을 만들어 나간다고 보는 편이 적합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고대의 감각을 전면적으로 내뿜고 있는 양자주의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여야 할까?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 구상과 추상의 구분을 무력하게 만드는 형상들, 안료에 흙을 섞어 바르고 긁거나 문지른 점·선·면이 양자주의 회화 속에서 날것처럼 드러나고 있다. 한없이 매끈한 동시대 미술의 경향 속에서 그가 주로 구사하고 있는 거칠고 뾰족한 표현이 다소 낯설거나 난해하게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난감한 관객에게 다행스러운 점이라고 한다면 전시장 내부에서 보여주는 작업의 경우 작가가 시각예술의 형식적 테두리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과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예민하게 사용한 촉각, 시각과 청각, 공감각과 같은 감각을 사용하는 일이 감상에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대형 회화와 사운드로 이루어진 <모든 것의 피부>(2023 - ) 시리즈와 신작 <불가살이>(2026) 시리즈, (2020- ) 시리즈 등을 통해 먼 과거의 감각을 불러오고 마주하기를 제안하고 있다.
학부에서 한국 고대사를 전공한 양자주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이다. 그는 30 대가 되어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했는데 막연히 큰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열망에 화방에서 재료들을 구입한 뒤 무언가를 그려낸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 되었다. 도시의 집이나 건물 외벽에 벽화를 제작한 것은 2000 년대 초반으로 전국적인 재개발이 성행하던 시기였다. 당시 작가는 어반 아트(Urban Art) 그룹의 구성원으로서 재개발 예정지를 찾아다니며 거리예술, 벽화, 아카이빙 등을 실천하였다. 그러면서 발견한 오래된 많은 물건들이나 집, 건물, 나아가 도시 전체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과 인접한 자연,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유대감 등이 그를 사로잡았다. 거대한 도시와 스며들어 있는 시간, 흘러가는 역사가 깃들어 주민들에게 보호수 같던 집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작가는 몸 하나로 개입하여 새기고 기억하려는 듯이 접근하였다. 이후 그는 2011 년 경 베를린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2023 년까지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였고 현재 서울을 근거지로 활동하고 있다.
밑줄을 그어보고 싶은 부분은 이러한 제도권 밖에서의 미술을 수행했던 경험과 과정이 작가에게 선명히 남긴 것이다. 공공미술 작가로서의 경험뿐만 아니라 지역의 바닥과 벽을 매만지고, 오래된 물건들을 헤아리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던 사적인 기억들은 작가가 인간과 자연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접근할 때 반추하는 무수한 감각이자 일종의 참고문헌이 되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이것을 촉감과 목소리로 집약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촉감과 목소리는 작가가 작업 전반을 설명하며 강조했던 말이기도 하고 앞서 ‘감각’이라고 뭉쳐 놓았던 것을 세분화할 수 있도록 돕는 개념이기도 하다. 이것들은 공통적으로 개인적인 신체로부터 비롯되거나 발현되는 것이라는 점과 영속성을 지녔다기 보다 투명하게 나타났다가 흐려지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피비갤러리 전시장에 흐르고 있는 긁거나 두드리는 반복적인 사운드가 보는 사람의 촉감을 극대화하듯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한다.
촉감은 작가의 손의 사용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테면 손으로 안료를 뭉치거나 화면 위에 바르고 붙이고, 꽂고, 묶고, 찍어내는 행위이자 동시에 그것이 발현시킨 또 다른 촉각적 심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촉감의 발생 과정에서 양자주는 흙, 진주핀, 밧줄과 같이 입자가 굵거나 분명한 것들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런 재료가 엉겨 붙어 오돌토돌 튀어나오거나 반대로 패인 상태를 통해 발현하고자 하는 감각을 다시 촉각적인 방식으로 가시화 시킨다. 한편 사람을 비롯한 생물 나아가 초자연의 소리 정도로 통칭할 수 있는 목소리는 촉감을 획득하거나 생산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비물질이기도 하고 반대로 촉감을 강조하는 장치가 되어준다. 예를 들어 이번 전시의 사운드 작품은 탄성을 지닌 캔버스 천에 작가가 손을 댈 때 발생하는 진동과 울림, 마찰음 등을 수음하여 소스로 사용한 것이다. 마치 깊은 지층 내부의 생명이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듯 한 소리를 통해 양자주의 화면은 먼 과거의 감각과 현실 사이에서 원초적으로 뒤섞인 촉감과 목소리를 연결시키는 표면이 된다.
이와 같은 표면을 지지체인 동시에 피부(skin)로 일컫고 있는 대표적인 작업이 <모든 것의 피부> 시리즈이다. 150cm 내외의 정방형을 지닌 이 시리즈는 얼핏 보면 마치 박물관의 동굴벽화 같기도 하고 어린아이의 그림같이 보이기도 한다. 작가가 빈 화면과 대면하는 순간 즉흥적으로 낚아챈 감각을 재료와 손을 통해 표현한 뒤, 생겨난 한 요소가 다른 요소를 구성하는 데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작업하였다. 영상인류학자 미나토 지히로(港千尋)에 따르면 피부는 몸 전체를 둘러싼 -눈과는 달리 외부를 향해 항상 열린 상태의- 촉각 감각기관이다. 그는 『생각하는 피부』(2014)에서 아프리카 원시부족의 월등한 촉감 인지 능력을 언급하며 도시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감각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양자주는 열려있는 신체이자 경계로서의 피부를 통해 이처럼 인간이 저도 모르게 잃어버린 능력, 미신으로 치부된 영역을 감각해 보려 한다. 화면 속의 토템을 닮은 형상들이 무엇을 목적하고 있는가, 원시적인 색채와 질감이 보는 사람을 어디로 데려가고자 하는가 등에 대해 작가는 꽤나 선명한 답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글의 도입부에 언급한 것과 유사한 종류의 한국의 민담과 고전 설화에 작가는 관심이 많다. 설화에 깃든 사람들의 풍습이나 사고방식을 되짚어 볼 수 있을뿐만 아니라 인류학적 구조주의에서 말하는 자연과 문화, 삶과 죽음 등의 이항대립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 본격적인 신작으로 선보이는 <불가살이> 시리즈는 동명의 불가살이(不可殺伊) 설화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강렬한 사선 구도와 올 오버 구성이 교차하여 나타나는 평면 작업이지만 부분적으로 빼곡히 채워진 엄나무 가시와 안쪽으로 천산갑 비늘처럼 파고든 진주핀의 대비, 감긴 밧줄 등 재료를 통한 패턴이 특징을 이룬다. 설화 속 불가살이는 밥풀의 외형으로 태어나 쇠붙이를 먹으면서 몸집을 키우고, 불에 넣으면 재가 되었다가 다시 바람처럼 살아나는 불사이자 변신하는 존재이다. <모든 것의 피부>와 마찬가지로 화면 속에서 이야기 자체에 대한 힌트를 던지는 대신 과감하게 그어진 선과 선 사이, 분할된 면면의 안쪽, 재료와 재료 틈새에서 드러난 여백 그리고 표현들이 불가살이 설화에서 작가가 발견한 철학과 감각이 버무려지고 있는 지점을 반영하고 있다.
신화를 원본이 없는 변이형의 총합으로 이해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입장과 같이 수백만 년 전의 감각과 수백 년 전의 설화, 수십 년 전의 민담에 이르기까지 양자주가 되짚으려는 비과학적인 이야기들이 실체 없이 시대와 장소를 오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작업을 통해 그가 문명 이전의 것들의 가치를 되새기려 하거나 미신이나 원시성을 무조건적으로 긍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캔버스 표면 위의 수많은 흔적들은 유구한 시간을 거치는 동안 우리에게 원래 있었으나 현재 잃은 것은 무엇인지, 여전히 남은 것은 무엇인지를 더듬어 찾고, 느껴보려는 시각예술의 언어이기도 하다. 유사한 맥락에서 발견한 오브제에 영역을 정하여 엄나무 가시를 촘촘히 붙인 시리즈는 이러한 작가로서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물건을 담는 안쪽에 가시가 돋아난 상자라던가 매끈한 거울면을 점유한 가시들과 같이 레디메이드 사이의 물성을 낯설게 접붙여 발생한 초현실적인 감각과 나아가 이것이 전시장에 위치함으로써 더해지는 사(史)적 해석의 맥락을 덧입힌다.
어째서 빈틈없이 날을 세우고 있는 엄나무 가시와 가지런하게 응집해 꽂혀 있는 진주핀의 모습에서 예전 를 위해 부산 바닷가 마을 외딴 집에 매일 찾아가 지장을 수천 번 정성스럽게 찍어내는 작가의 모습이 겹쳐지는 걸까? 스튜디오 안팎을 막론하고 마치 기도하거나 염원하듯이 양자주의 수행성에는 자신이 마주한 것들을 만지고 개입하는 일에 대한 조심스러움과 성실함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긴 시간을 버티고 통과하여 생명력을 지니게 된 것들에 대한 공경과 존중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이렇듯 그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촉감과 목소리, 오감에 귀를 기울이며 손끝에 저장되어 있다고 믿는 즉흥적이고 태초적인 감각, 언어나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말하고 있다. 거칠고 미스터리 하며 오돌토돌한 표면으로. 다양한 비언어적 소리를 만들어내며. 이번에는 이것을 듣고자 하고 보고자 하는 관객 스스로의 감각을 찾아볼 차례이지 않은가. 조심스럽고도 성실하게 말이다.